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란 7대 가문 (문단 편집) === [[아르사케스 왕조]]-[[사산 왕조]] === 본격적으로 일곱 가문의 전통이 시작된 것은 [[파르티아]] 시대이다. 파르티아의 건국 세력은 기존에 페르시아 본토인들로 인식되던 아리아인이 아닌 동북방 유목민인 다하이족이었고, 따라서 이란에 들어가 왕족이 되는 데는 현지 귀족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아르사케스 1세]]가 나라를 세울 때 지원해 준 일곱 가문이, 이란 귀족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권력을 누리게 되었다. 또 아르사케스 왕조가 약해지자 파르스의 귀족 가문 사산 가문이 반란을 일으키고 제위를 찬탈하여 [[사산 왕조]]를 세우는 데, 이 귀족들은 그대로 충성의 대상을 바꾸어 사산 왕조의 대귀족으로 존속했다. 사산 왕조 시대에는 다른 귀족들과 격을 두어 '바스푸라간'이라는 고유 호칭으로 불렸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자신들이 [[페르시아 신화]]에 나오는 전설 속의 왕조인 카야니아 왕조의 샤 비슈타스파를 모신 귀족 가문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으며, 사산 왕조에 잊혀졌던 [[아케메네스 왕조]]의 역사가 다시 알려진 후에는 아케메네스 가문이나 아케메네스조의 귀족 가문과 자신들의 계보를 이어맞추기도 했다. 이들은 파르티아 시대에는 거의 황실과 맞먹을 만한 권한을 누렸다, 봉건제에 가까웠던 파르티아 시대인만큼 귀족 평의회가 있어 황권을 제한했으며, 황권이 약해지는 시점에는 제위 계승 등 민감한 문제까지 이들이 개입했다. 하지만 사산 왕조 때부터는 황권이 강화되어 황족과 황족 출신의 부왕(샤흐르다란) 밑의 계급에 위치했다. 그럼에도 나라 전체로 보았을 때 매우 높은 지위인 것은 변함이 없었으며, 각 가문 고유의 업무는 물론 국정 전반에 관여했다. * [[수렌 가]] * [[카렌 가]] * [[메흐란 가]] * [[에스파흐바드 가]] * [[지크 가]] * [[스판디야드 가]] * [[바라즈 가]] 보통 위의 일곱 가문을 바스푸라간 가문으로 분류하며, 사산 왕조 이후에는 지크 가나 바라즈 가를 빼고 황족인 사산 가를 넣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사산 왕조가 망하는 그날까지도 권세를 유지했으나, 이슬람 제국의 페르시아 정복 이후에 모조리 축출되어 사라진다. 사산 왕조 멸망 이후 존속한 [[조로아스터교]] 세력의 지도자들도 사산 가문을 참칭했으면 참칭했지 굳이 귀족 가문을 참칭하지는 않았다. 단, [[사만 왕조]]는 [[메흐란 가]]의 후예임을 천명하였다. [[분류:역사]][[분류:귀족 가문]][[분류:아시아의 귀족 가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